Culture & People, people | May, 2020
풍요로운 감성이 냉철한 이성을 만나
착한 디자인을 낳는다

글 변라영.편집위원 사진 김하인
대전시향 후원회 (사)높은음자리표 이사장
KAIST 산업디자인학과 명예교수
김명석
산업디자인의 역사, 대덕연구단지의 산증인
크고 거친 것만이 강함이 아니듯, 우격다짐만이 고집이 아니다. 우리나라 산업디자인 학계를 이끌어온 KAIST 산업디자인학과가 올해로 35주년을 맞았다. 그 태동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집스레 그 현장을 지켜온 터주대감 김명석 명예교수. 그럴 인터뷰하고 봄꽃 만발한 계룡산 자락을 돌아 나오는 길, 강함과 고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대전시내 공연장에서 어김없이 만날 수 있는 콧수염 신사가 있다. 대전 시립교향악단 후원회 (사)높은음자리표 이사장이자 KAIST 산업디자인학과 명예교수 김명석. 콧수염과 함께 트레이드 마크인 나비넥타이를 맨 그가 나타나야 공연장 그림은 완성된다.
우리나라 산업디자인의 역사는 그를 빼고 얘기 할 수 없다. 더군다나 KAIST 산업디자인학과는 말할 것도 없다. 홍익대학교 응용미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약관 28세의 나이에 전문대학 전임강사를 하던 시절,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일하던 때였지만 평생 이 분야에서 일하려면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당시 국내에서 디자인 분야에 박사과정은 개설된 곳이 없었기에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고, 디자인 분야에서는 국내 최초로 일본의 국비장학생이 되어 오사카대학에서의 유학이 시작되었다. 5년간의 유학생활이 끝나갈 무렵, 한국에서는 대덕연구단지가 조정되는 중이었고, 이에 발맞추어 한국과학기술대학교 이곳에 설립될 예정이었다. 1984년 말, 김교수는 서울의 명문대학을 마다하고 과기대 설립준비팀에 전격 합류했다. 그리고 1986년 국내 최초로 미술 실기시험을 치지 않는, 이공계 기반의 산업디자인학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까리용, 뫼비우스의 띠, 금요문화행사도 그의 작품
그를 빼고 애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오늘날 대전은 물론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KAIST 금요문화행사도 그의 작품이다. 어린시절 늘 음악과 함께 했던 경험, 일본 유학시절 늘 음악과 함께 했던 경험, 일본 유학시절 주말마다 토쿄와 나라 등지의 문화시설과 유적을 찾아다닌 경험을 그의 연구생활에 큰 영감을 주곤 했는데 그 시절 KAIST 학생들에겐 문화예술을 경험할 여건이 너무나 열악했다. 당시 고 최순달 학장에게 건의해 시작한 것이 바로 KAIST 금요문화행사, 음악, 연국, 무용 공연은 물론 인문학 강연까지 34년간 700회를 넘게 이어오고 있다. 첫회 무대는 김동길 교수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명강이었다. 금난새 전임지휘자가 이끌던 KBS 교향악단을 초청했을 때, 김교수는 공부만 하고 살아온 이공대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해설을 곁들여 달라고 부탁했는데 금난새 선생의 해설이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그 유명한 금난새의 해설이 있는 청소년음악회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KAIST의 명물 오리연못가의 조형물 까리용 또한 그의 작품이다. KAIST 설립 20주년을 맞아 동창회에서 의뢰한 기념조형물을, 과학기술과 접목시켜 한치의 오차도 없으면서 유럽 대성당의 종소리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 KIAST의 명물이 되었다.
대전국립중앙과학관 광장이자 대덕연구단지 초입의 조형물 거대한 뫼비우스의 띠도 그가 주도한 작품이다. 1992년 대덕연구단지 조성 완성을 기념해 만들어진 이 거대 조형물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과학기술 연구에는 끝이 없고, 끝없는 연구만이 미래를 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도도하게 던져주고 있다.
인생의 인연과 은인
우리나라 산업디자인 개척의 선봉에 서 왔던 지난 40년, 그를 일깨워주고 용기를 주었던 인연과 은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남이 미술대학을 가겠다는 데도 믿고 지지해주신 부모님과 일본 유학을 앞두고 청혼을 받아들이고 멀고 험한 길을 함께 해준 아내를 첫 번째로 꼽아야 한다. 날카롭던 사춘기 시절, 그림을 지도해주신 유영필 선생님과 화실에 종종 놀러 오시던 장욱진 선생님과의 인연도 그렇다. 허름한 차림새에 소주 심부름을 시키시던 장욱진 선생님은 목탄 데생을 하던 그에게 툭 던지듯 목탄에서 빛이 나게 그리라고 하셨다. 목탄 데생에 이골이 날 때쯤 그는 장욱진 선생님의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까만 목탄에서 빛을 그려낼 수 있을 때쯤 말이다.
대전 콘서트전용홀 건립, 꿈은 이루어진다
35년 교수생활을 내려놓은 지 이제 5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직도 바쁜 일상들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KAIST 교수 중창단과 대덕교회 어메이징그레이스 찬양단에서 노래연습에, 노래봉사에,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행복하다. 환갑이 되는 해 시작한 할리데이빗슨 모터사이클 라이딩과 MTB도 그의 소중한 취미생활. 오랫동안 쉬어 왔던 클라리넷도 다시 배우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가장 절실한 소망은 대전 콘서트 전용홀 건립이다. 선진국들은 어려운 시기에도 문화예술에 꾸준히 투자해왔다. 대전시민의 경제적, 문화적 수준은 이제 콘스트전용홀 건립을 요구하고 있다.
갑동 집 현판의 삼락재. 맹자의 세가지 즐거움 중 좋은 제자들을 만나 가르치고 배움을 나누는 복을 실컷 누렸다는 그는 이제 지역사회를 위해 그리고 시민들을 위해 콘서트 전용홀 건립의 소명을 다하려고 한다. 지난 세월, 고집스런 그가 뜻을 가지면 언젠가 이루어졌듯이 콘서트전용홀 건립의 꿈도 머지 않아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디자인유노, 김명석 교수님을 만나다!
디자인계에서는 신화같은 존재 이신 김명석 교수님을 사회에서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로봇디자인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논문에서 교수님의 이름을 자주 뵈었었는데 직접 전화를 주시고 정말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인연이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지속하고, 그것을 생각하다 보면 존경하는 분도 만날 수 있는 것이구나. 현실로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네요. 디자인유노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순간 한순간 배움의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거장의 아우라는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반도체장비 디자인
국내 유수 기업의 장비이다 보니 PI를 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 였겠지요^^? 2017부터 지금까지의 프로젝트는 반도체 라인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장비라서 라인에 들어갈 때 디자이너들도 방진복과 에어샤워를 하고 회사 초입부터 카메라등 보안물품들을 다 내려놓고 입실을 해야하는 터라 생활속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이 아니어서 무척 아쉽습니다. 이처럼 반도체 장비 디자인도 지켜야할 까다로운 특성들이 있습니다. 제품이 양산되어 대박나는 날 반도체장비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시장에서 그 역할을 잘 해주길 기대합니다.
반도체 산업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지만 공정의 핵심 소재. 부품. 장비는 아직까지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핵심 장비인 전공정 장비들의 기술력은 아직까지 해외장비에 밀리는 바, 꾸준한 연구개발로 완벽한 국산화가 이루어 졌으면 합니다. 스타트가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빨리 올라온 대한민국, 이렇게 계속 꾸준히 걸어간다면 무서울게 없을 것 입니다.
Photo Equipment Design | Manual OMEGA - PRIME | PI 정립작업

중소벤처기업부| 국내 반도체시장동향 https://search.mss.go.kr/RSA/front_new/Search.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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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People, people | May, 2020
풍요로운 감성이 냉철한 이성을 만나
착한 디자인을 낳는다
글 변라영.편집위원 사진 김하인
대전시향 후원회 (사)높은음자리표 이사장
KAIST 산업디자인학과 명예교수
김명석
산업디자인의 역사, 대덕연구단지의 산증인
크고 거친 것만이 강함이 아니듯, 우격다짐만이 고집이 아니다. 우리나라 산업디자인 학계를 이끌어온 KAIST 산업디자인학과가 올해로 35주년을 맞았다. 그 태동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집스레 그 현장을 지켜온 터주대감 김명석 명예교수. 그럴 인터뷰하고 봄꽃 만발한 계룡산 자락을 돌아 나오는 길, 강함과 고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대전시내 공연장에서 어김없이 만날 수 있는 콧수염 신사가 있다. 대전 시립교향악단 후원회 (사)높은음자리표 이사장이자 KAIST 산업디자인학과 명예교수 김명석. 콧수염과 함께 트레이드 마크인 나비넥타이를 맨 그가 나타나야 공연장 그림은 완성된다.
우리나라 산업디자인의 역사는 그를 빼고 얘기 할 수 없다. 더군다나 KAIST 산업디자인학과는 말할 것도 없다. 홍익대학교 응용미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약관 28세의 나이에 전문대학 전임강사를 하던 시절,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일하던 때였지만 평생 이 분야에서 일하려면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당시 국내에서 디자인 분야에 박사과정은 개설된 곳이 없었기에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고, 디자인 분야에서는 국내 최초로 일본의 국비장학생이 되어 오사카대학에서의 유학이 시작되었다. 5년간의 유학생활이 끝나갈 무렵, 한국에서는 대덕연구단지가 조정되는 중이었고, 이에 발맞추어 한국과학기술대학교 이곳에 설립될 예정이었다. 1984년 말, 김교수는 서울의 명문대학을 마다하고 과기대 설립준비팀에 전격 합류했다. 그리고 1986년 국내 최초로 미술 실기시험을 치지 않는, 이공계 기반의 산업디자인학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까리용, 뫼비우스의 띠, 금요문화행사도 그의 작품
그를 빼고 애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오늘날 대전은 물론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KAIST 금요문화행사도 그의 작품이다. 어린시절 늘 음악과 함께 했던 경험, 일본 유학시절 늘 음악과 함께 했던 경험, 일본 유학시절 주말마다 토쿄와 나라 등지의 문화시설과 유적을 찾아다닌 경험을 그의 연구생활에 큰 영감을 주곤 했는데 그 시절 KAIST 학생들에겐 문화예술을 경험할 여건이 너무나 열악했다. 당시 고 최순달 학장에게 건의해 시작한 것이 바로 KAIST 금요문화행사, 음악, 연국, 무용 공연은 물론 인문학 강연까지 34년간 700회를 넘게 이어오고 있다. 첫회 무대는 김동길 교수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명강이었다. 금난새 전임지휘자가 이끌던 KBS 교향악단을 초청했을 때, 김교수는 공부만 하고 살아온 이공대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해설을 곁들여 달라고 부탁했는데 금난새 선생의 해설이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그 유명한 금난새의 해설이 있는 청소년음악회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KAIST의 명물 오리연못가의 조형물 까리용 또한 그의 작품이다. KAIST 설립 20주년을 맞아 동창회에서 의뢰한 기념조형물을, 과학기술과 접목시켜 한치의 오차도 없으면서 유럽 대성당의 종소리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 KIAST의 명물이 되었다.
대전국립중앙과학관 광장이자 대덕연구단지 초입의 조형물 거대한 뫼비우스의 띠도 그가 주도한 작품이다. 1992년 대덕연구단지 조성 완성을 기념해 만들어진 이 거대 조형물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과학기술 연구에는 끝이 없고, 끝없는 연구만이 미래를 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도도하게 던져주고 있다.
인생의 인연과 은인
우리나라 산업디자인 개척의 선봉에 서 왔던 지난 40년, 그를 일깨워주고 용기를 주었던 인연과 은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남이 미술대학을 가겠다는 데도 믿고 지지해주신 부모님과 일본 유학을 앞두고 청혼을 받아들이고 멀고 험한 길을 함께 해준 아내를 첫 번째로 꼽아야 한다. 날카롭던 사춘기 시절, 그림을 지도해주신 유영필 선생님과 화실에 종종 놀러 오시던 장욱진 선생님과의 인연도 그렇다. 허름한 차림새에 소주 심부름을 시키시던 장욱진 선생님은 목탄 데생을 하던 그에게 툭 던지듯 목탄에서 빛이 나게 그리라고 하셨다. 목탄 데생에 이골이 날 때쯤 그는 장욱진 선생님의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까만 목탄에서 빛을 그려낼 수 있을 때쯤 말이다.
대전 콘서트전용홀 건립, 꿈은 이루어진다
35년 교수생활을 내려놓은 지 이제 5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직도 바쁜 일상들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KAIST 교수 중창단과 대덕교회 어메이징그레이스 찬양단에서 노래연습에, 노래봉사에,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행복하다. 환갑이 되는 해 시작한 할리데이빗슨 모터사이클 라이딩과 MTB도 그의 소중한 취미생활. 오랫동안 쉬어 왔던 클라리넷도 다시 배우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가장 절실한 소망은 대전 콘서트 전용홀 건립이다. 선진국들은 어려운 시기에도 문화예술에 꾸준히 투자해왔다. 대전시민의 경제적, 문화적 수준은 이제 콘스트전용홀 건립을 요구하고 있다.
갑동 집 현판의 삼락재. 맹자의 세가지 즐거움 중 좋은 제자들을 만나 가르치고 배움을 나누는 복을 실컷 누렸다는 그는 이제 지역사회를 위해 그리고 시민들을 위해 콘서트 전용홀 건립의 소명을 다하려고 한다. 지난 세월, 고집스런 그가 뜻을 가지면 언젠가 이루어졌듯이 콘서트전용홀 건립의 꿈도 머지 않아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디자인유노, 김명석 교수님을 만나다!
디자인계에서는 신화같은 존재 이신 김명석 교수님을 사회에서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로봇디자인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논문에서 교수님의 이름을 자주 뵈었었는데 직접 전화를 주시고 정말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인연이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지속하고, 그것을 생각하다 보면 존경하는 분도 만날 수 있는 것이구나. 현실로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네요. 디자인유노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순간 한순간 배움의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거장의 아우라는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반도체장비 디자인
국내 유수 기업의 장비이다 보니 PI를 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 였겠지요^^? 2017부터 지금까지의 프로젝트는 반도체 라인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장비라서 라인에 들어갈 때 디자이너들도 방진복과 에어샤워를 하고 회사 초입부터 카메라등 보안물품들을 다 내려놓고 입실을 해야하는 터라 생활속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이 아니어서 무척 아쉽습니다. 이처럼 반도체 장비 디자인도 지켜야할 까다로운 특성들이 있습니다. 제품이 양산되어 대박나는 날 반도체장비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시장에서 그 역할을 잘 해주길 기대합니다.
반도체 산업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지만 공정의 핵심 소재. 부품. 장비는 아직까지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핵심 장비인 전공정 장비들의 기술력은 아직까지 해외장비에 밀리는 바, 꾸준한 연구개발로 완벽한 국산화가 이루어 졌으면 합니다. 스타트가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빨리 올라온 대한민국, 이렇게 계속 꾸준히 걸어간다면 무서울게 없을 것 입니다.
Photo Equipment Design | Manual OMEGA - PRIME | PI 정립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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